박수근-Korean

 

박수근(1914~1965) 박수근(1914~1965)

박수근은 20세기의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흑백과 여백으로 대표되는 동양화, 예를 들어 색을 도외시하고 선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미술 작법을 싫어합니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 까칠까칠한 화강암식 질감이 화면을 뒤덮고 있어 인물의 표정이나 제스처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감상에 불편을 초래합니다. 거의 쉽지 않은 미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작품으로 찾아오거든요. 개인 취향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근 화백은 김환기 화백의 추상화가, 역대 한국 서양화의 경매 최고가를 거듭 경신하는 기록을 제조하기 이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였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읍 내 정림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광산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 가난에 허덕이는 환경에서 자라게 됩니다. 양구공립보통학교에 들어갔을 때 미술에 소질을 보였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도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당시에는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가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화가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승도 없이 혼자 그림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18세가 되던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출품한 봄 농가를 그린 수채화 ‘봄이 온다’가 입선했습니다. 당시 ‘선전’에서의 입선은 조선인이 화가로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매우 기뻐했지만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어려운 생활을 도맡아 하는 삶의 고삐에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1933년부터 계속해서 3번 낙선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21세 때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늘어난 빚으로 금강산으로 피신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박수근은 홀로 춘천에서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림 그리기에 정진하여 마침내 1936년 제15회 선전에서 수채화 ‘일하는 여인’으로 두 번째 입선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박수근은 아버지가 재혼해 살고 있는 금성의 집에 와서 빨래터에 있는 김복순을 보고 결혼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김복순의 집에서는 의사 집 아들과의 약혼을 서두르는 바람에 박수근은 상사병으로 몸져 눕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 승낙을 받아 두 사람은 1940년 2월 10일 금성감리교회에서 한사연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한 후 아내 김복순은 몇 시간 동안 박수근의 그림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절구를 돌리는 여성의 모델로 아내를 세웠습니다. 결혼 3개월 만에 박수근은 평안남도 도청 사회과 서기로 취직하여 아내와 함께 평양으로 이주합니다. 휴일에는 평양 화가들과 어울려 스케치도 하고 일본 유학파 최영림, 장리석, 황유엽 등과 함께 ‘주호회’라는 그룹을 만들어 1944년까지 매년 동인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1941년 박수근은 그의 아내를 모델로 그린 ‘절구질녀’를 20차 홍보에 출품하여 입선합니다. 1945년 8월 15일 평양에서 해방을 맞은 박수근은 도청을 그만두고 금성으로 돌아와 금성중학교 미술교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해방공간의 금성은 공산주의였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인 박수근은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1947년 둘째 아들 성남을 얻었지만 이듬해 큰아들 성소를 뇌염으로 여의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박수근은 가족과 함께 금성에서 수십 리 떨어진 시골로 피신합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후퇴로 생명까지 위태로워지자 박수근은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남하했습니다. 갑자기 이산가족이 된 데다 전쟁 과정에서 두 살배기 셋째 아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사선을 넘어 탈출을 감행한 아내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남편이 서울에 있는 친정 동생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노량진 한강변에서 어렵게 도강증을 찾아 서울로 들어가 갖은 고생 끝에 남편을 만나 가족끼리 재회합니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 생계가 어려웠습니다. 싼값에 화방에 그림을 팔아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중 미군 PX에서 미군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얻게 됩니다. 이때 훗날 소설가로 대성한 박완서를 만났다고 전해집니다. 미군 PX로 힘겹게 모은 돈으로 박수근은 창신동에 작은 집 한 칸을 마련하고 전쟁과 피난으로 놓아둔 붓을 다시 손에 넣었습니다. 휴전이 되고 나서 박수근은 새로 생긴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으로 입선하여 한국 미술계에서 화가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특유의 소박한 인물과 풍경이 굵고 검은 윤곽선에 황갈색 색채와 두터운 질감, 명암과 원근이 없는 단순한 형태의 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흔 살이 되던 1954년부터 1956년까지 계속 입선했지만 1957년 43세 때 제6회 국전에서는 낙선했습니다. 박수근은 매우 실망했지만 이 무렵 반도화랑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한 달에 한두 번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한국에 온 미국인 미술 애호가들이 그의 작품을 샀는데, 그의 그림에서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중 단골손님은 미국대사관 문정관인 그레고리 헨더슨의 아내로 캘리포니아 거주 마거릿 밀러 여사가 특히 박수근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밀러 여사는 귀국 후에도 우편으로 박수근의 그림을 계속 사들이고 화구를 보내는 등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박수근의 화풍은 원숙해졌습니다. 대상이 명확해지고 독특한 질감의 표현방식으로 독자적인 조형성을 이루었습니다. 해외에도 작품이 소개되기 시작해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에 <모자>, <길거리>, <풍경>이 전시되고 반도화랑 창설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인 시리아 짐머만이 소장하고 있던 <노변 보따리상>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동서미술전’에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의 잇따른 출품 소식에 한국 미술계에서도 박수근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1959년 그는 국전의 추천작가가 되어 8회부터 14회까지 매년 심사를 거치지 않고 국전에 출품하였습니다. 1959년 그는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3회 현대작가 초대전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1962년 제11회 박수근은 20세기의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흑백과 여백으로 대표되는 동양화, 예를 들어 색을 도외시하고 선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미술 작법을 싫어합니다. 게다가 언뜻 보기에 까칠까칠한 화강암식 질감이 화면을 뒤덮고 있어 인물의 표정이나 제스처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감상에 불편을 초래합니다. 거의 쉽지 않은 미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작품으로 찾아오거든요. 개인 취향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근 화백은 김환기 화백의 추상화가, 역대 한국 서양화의 경매 최고가를 거듭 경신하는 기록을 제조하기 이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였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독서, 1950년 하드볼라드 위의 오일, 20.1x13cm, 개인컬렉션 독서, 1950년 하드볼라드 위의 오일, 20.1x13cm, 개인컬렉션

박수근 화백이 그린 유일한 <독서> 그림으로 작품의 모델이 된 소녀는 작가의 장녀 박인숙 씨입니다. <아기를 업은 소녀>의 모델도 어린 시절 박인숙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자라서 아버지를 따라 서양화가가 됩니다. <독서>는 단발머리에 한복 차림의 어린 소녀가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고사리 손에 책을 쥐고 읽는 모습이 담긴 따뜻하고 정겨운 작품입니다. 박수근 화백이 그린 유일한 <독서> 그림으로 작품의 모델이 된 소녀는 작가의 장녀 박인숙 씨입니다. <아기를 업은 소녀>의 모델도 어린 시절 박인숙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자라서 아버지를 따라 서양화가가 됩니다. <독서>는 단발머리에 한복 차림의 어린 소녀가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 고사리 손에 책을 쥐고 읽는 모습이 담긴 따뜻하고 정겨운 작품입니다.

장남 박성남 1952 oil on hardboard 28 x 21cm 장남 박성남 1952 oil on hardboard 28 x 21cm

‘장남 박성남’은 박수근 화백이 다섯 살 된 아들 박성남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원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큰아들이 어려서 돌아가셔서 큰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칠순이 된 아들 박성남 씨(70)도 아버지처럼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됐습니다. 이 작품은 아버지 박수근이 미국 PX에서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만든 창신동 당고개 집으로 이사했을 때 처음 그린 것입니다. 장난꾸러기 아들을 5~6시간이나 모델로 앉혀 그렸다는 이 상반신 인물화에는 화가의 애틋한 비리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장남 박성남’은 박수근 화백이 다섯 살 된 아들 박성남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원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큰아들이 어려서 돌아가셔서 큰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칠순이 된 아들 박성남 씨(70)도 아버지처럼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됐습니다. 이 작품은 아버지 박수근이 미국 PX에서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만든 창신동 당고개 집으로 이사했을 때 처음 그린 것입니다. 장난꾸러기 아들을 5~6시간이나 모델로 앉혀 그렸다는 이 상반신 인물화에는 화가의 애틋한 비리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박수근 아들 박성남(오른쪽) 화백과 손자 박진훈 화백(가운데) 박수근 아들 박성남(오른쪽) 화백과 손자 박진훈 화백(가운데)

화가 AAA1은 ‘AAA2 탄생 100주년 기념전'(2014년 가나 인사이트 센터)에서 자신의 초상화 ‘장남 AAA3’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전쟁으로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다 마지막으로 극적인 상봉을 한 뒤 아버지는 먼저 다섯 살 난 나를 앉히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그 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아들의 초상이다 화가 AAA1은 ‘AAA2 탄생 100주년 기념전'(2014년 가나 인사이트 센터)에서 자신의 초상화 ‘장남 AAA3’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전쟁으로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다 마지막으로 극적인 상봉을 한 뒤 아버지는 먼저 다섯 살 난 나를 앉히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그 시대를 살아온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아들의 초상이다

청소부 1963 oil on canvas, 33.4 x 53cm 청소부 1963 oil on canvas, 33.4 x 53cm

기억하고 있습니까? 옛날 청소부는 리어카에 뚜껑이 달린 청소차(?)를 끌고 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했습니다. 196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아니 일부 지역에서는 60년대 후반까지 그런 청소차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2년에 발견되었습니다. 박수근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집안일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에 각별한 경의를 가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의 시대는 전쟁으로 사라진 남성들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부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평론가들에게 박수근은 남자는 그리지 않은 화가로 인식되었는데, 그 편견을 깬 작품이 바로 ‘청소부’였습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옛날 청소부는 리어카에 뚜껑이 달린 청소차(?)를 끌고 다니며 쓰레기를 수거했습니다. 196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아니 일부 지역에서는 60년대 후반까지 그런 청소차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02년에 발견되었습니다. 박수근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집안일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에 각별한 경의를 가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의 시대는 전쟁으로 사라진 남성들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부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평론가들에게 박수근은 남자는 그리지 않은 화가로 인식되었는데, 그 편견을 깬 작품이 바로 ‘청소부’였습니다.

모자, 1961, oil on canvas, 45.5 x 38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모자, 1961, oil on canvas, 45.5 x 38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모자는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비슷한 구도로 그려진 그림으로 ‘할머니와 손자(1960년대 초 45.5×37.9cm)’, ‘할아버지와 손자(1964, 146×97.5cm)’가 있습니다. 그림의 크기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가장 크고 <할아버지와 손자>, <모자>는 비슷한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자손을 감싼 팔의 궤적이 새겨지는데, 할머니와 손자, 모자에서는 둥글게 감싼 곡선의 미가 표현되어 눈길을 끕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성 측면에서 볼 때 세 작품 중 <모자>가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됩니다. 모자는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비슷한 구도로 그려진 그림으로 ‘할머니와 손자(1960년대 초 45.5×37.9cm)’, ‘할아버지와 손자(1964, 146×97.5cm)’가 있습니다. 그림의 크기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가장 크고 <할아버지와 손자>, <모자>는 비슷한 크기로 제작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자손을 감싼 팔의 궤적이 새겨지는데, 할머니와 손자, 모자에서는 둥글게 감싼 곡선의 미가 표현되어 눈길을 끕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성 측면에서 볼 때 세 작품 중 <모자>가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됩니다.

고양이, 1962년 하드보드에 기름, 18×24cm [서울옥션(2017.11), 3.8억] 고양이, 1962년 하드보드에 기름, 18×24cm [서울옥션(2017.11), 3.8억]

작품 ‘고양이’는 박수근 화가가 창신동 집에 머물 당시 키우던 반려묘를 그린 것입니다. 이 시기의 박수근은 민화를 비롯한 전통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착안하여 몇 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의 작품 <고양이>도 그러한 작품 활동의 한 예가 됩니다. 검은색과 흰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웅크린 채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고양이의 습성은 반려묘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현재까지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작품 ‘고양이’는 박수근 화가가 창신동 집에 머물 당시 키우던 반려묘를 그린 것입니다. 이 시기의 박수근은 민화를 비롯한 전통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착안하여 몇 개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위의 작품 <고양이>도 그러한 작품 활동의 한 예가 됩니다. 검은색과 흰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웅크린 채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고양이의 습성은 반려묘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현재까지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쪼그리고 앉은 개, 1950 후반~1960 전반,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쪼그리고 앉은 개, 1950 후반~1960 전반,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이 작품은 1965년 유작전이 열렸을 때 판매된 이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개인 소장품입니다. 물감을 여러 겹 겹쳐가며 흰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검은 선으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개를 그렸습니다. 거친 선으로 개의 모양을 대략적으로 그려 넣은 선묘화입니다. 이 작품은 1965년 유작전이 열렸을 때 판매된 이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개인 소장품입니다. 물감을 여러 겹 겹쳐가며 흰 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검은 선으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개를 그렸습니다. 거친 선으로 개의 모양을 대략적으로 그려 넣은 선묘화입니다.

실직, 1960년대, oil on canvas, 41×21.5cm, 개인소장 실직, 1960년대, oil on canvas, 41×21.5cm, 개인소장

1962년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도서관에서 열린 개인전 ‘(미술) Park Soo Keun’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한 남성은 구직활동에 지친 나머지 드러누워 어질러져 있고, 또 다른 남성은 가족의 생계 걱정으로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전체 배경에는 연한 녹색이 흩어져 있습니다. 당시 작품은 전시 후 알래스카 대학 박물관에 판매되어 다시 국내로 반입되었습니다. 작품 뒷면에는 작가 소개, 알래스카 대학 소장 관련 기록, 경매 판매 기록, 전시 이력과 소장 이력이 꼼꼼하게 적혀 있습니다. 1962년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도서관에서 열린 개인전 ‘(미술) Park Soo Keun’에 출품된 작품입니다. 한 남성은 구직활동에 지친 나머지 드러누워 어질러져 있고, 또 다른 남성은 가족의 생계 걱정으로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전체 배경에는 연한 녹색이 흩어져 있습니다. 당시 작품은 전시 후 알래스카 대학 박물관에 판매되어 다시 국내로 반입되었습니다. 작품 뒷면에는 작가 소개, 알래스카 대학 소장 관련 기록, 경매 판매 기록, 전시 이력과 소장 이력이 꼼꼼하게 적혀 있습니다.

두사람, 1960년대, 오일 온 패널, 18.5 x 23.5cm[K-옥션(2007.9), 7.9 억] 두사람, 1960년대, 오일 온 패널, 18.5 x 23.5cm[K-옥션(2007.9), 7.9 억]

한일,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2003, 뉴욕 크리스티, 13억] 한일,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2003, 뉴욕 크리스티, 13억]

한일’은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모여 있는 남자들을 다룬 1950년대 작품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가한 날이면 남자들이 모여 앉아 장기 말을 진행했습니다. 조금 느긋한 동네에서는 바둑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공원에 나가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에게 공공기관이 무상 대여하는 놀이기구가 장기판과 바둑판입니다.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그룹이 국가에 기증한 회장 컬렉션 중 유화 4점, 드로잉 18점과 함께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 분산 배치돼 소장 중입니다. 작품 ‘한일’은 박수근 선생이 1959년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출품한 그림인데, 해외로 반출되어 2003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것을 삼성 이건희 회장이 구입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일’은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모여 있는 남자들을 다룬 1950년대 작품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가한 날이면 남자들이 모여 앉아 장기 말을 진행했습니다. 조금 느긋한 동네에서는 바둑판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공원에 나가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에게 공공기관이 무상 대여하는 놀이기구가 장기판과 바둑판입니다.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그룹이 국가에 기증한 회장 컬렉션 중 유화 4점, 드로잉 18점과 함께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 분산 배치돼 소장 중입니다. 작품 ‘한일’은 박수근 선생이 1959년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출품한 그림인데, 해외로 반출되어 2003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것을 삼성 이건희 회장이 구입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일(閑日) detailed 한일(閑日) detailed

……………………….. 시장의 풍경입니다 ……………………….. 시장의 풍경입니다

시장, 1950 시장, 1950

시장, 1950년대, 23×13cm [K-Auction(2016.6), 4억2천만원] 시장, 1950년대, 23×13cm [K-Auction(2016.6), 4억2천만원]

시장에서 모여 앉아 있는 서민들의 일상을 포착해 앙상한 전후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유명한 아시아 미술 수집가였던 고 호튼 프리먼 미국 AIG사 부회장이 박수근에게 직접 구입해 소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작품 제목 ‘장터’로 제작된 그림이 2점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림 속에 피리를 불고 있는 상인이 등장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리부는 노인이 등장하는 시장의 그림을 더 좋아합니다. 시장에서 모여 앉아 있는 서민들의 일상을 포착해 앙상한 전후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유명한 아시아 미술 수집가였던 고 호튼 프리먼 미국 AIG사 부회장이 박수근에게 직접 구입해 소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작품 제목 ‘장터’로 제작된 그림이 2점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림 속에 피리를 불고 있는 상인이 등장하고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피리부는 노인이 등장하는 시장의 그림을 더 좋아합니다.

시장 사람들, 1961, 메소나이트에 유채, 62.4×24.9cm [K-Auction(2007.3), 25억] 시장 사람들, 1961, 메소나이트에 유채, 62.4×24.9cm [K-Auction(2007.3), 25억]

길거리의 사람들을 그린 ‘시장 사람들’은 세부 묘사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몇 개의 굵은 윤곽선으로만 표현한 작품입니다. 독학으로 자신만의 회화 양식을 확립한 박수근의 또 다른 걸작으로 가족을 위해 삶의 현장에 나선 서민들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12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이 작품은 박수근을 존경하던 한 외국인이 40년간 소장해오다 2000년대 초 한국인 소장가에게 팔렸습니다. 박수근 작품 속에서 비교적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작가의 다른 그림처럼 회백색 화강암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질감과 단순한 검은 선이 돋보입니다. 길거리의 사람들을 그린 ‘시장 사람들’은 세부 묘사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몇 개의 굵은 윤곽선으로만 표현한 작품입니다. 독학으로 자신만의 회화 양식을 확립한 박수근의 또 다른 걸작으로 가족을 위해 삶의 현장에 나선 서민들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12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이 작품은 박수근을 존경하던 한 외국인이 40년간 소장해오다 2000년대 초 한국인 소장가에게 팔렸습니다. 박수근 작품 속에서 비교적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작가의 다른 그림처럼 회백색 화강암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질감과 단순한 검은 선이 돋보입니다.

시장 사람들, 1961, oil on canvas, 25 x 62cm 시장 사람들, 1961, oil on canvas, 25 x 62cm

시장 사람들, 1962, oil on canvas, 23 x 28 cm 시장 사람들, 1962, oil on canvas, 23 x 28 cm

市場の女、1963 캔버스 、 오일 29.5 x 28cm / 서울옥션 (2005.12)、9 億 市場の女、1963 캔버스 、 오일 29.5 x 28cm / 서울옥션 (2005.12)、9 億

시장의 여자’는 길에 쪼그리고 앉아 바구니에 뭔가를 넣은 채 노점을 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과거 우리 시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시장의 여자’는 길에 쪼그리고 앉아 바구니에 뭔가를 넣은 채 노점을 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과거 우리 시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앉아있는 여성, oil on canvas, 23.6 x 21.5cm [서울옥션(2018), 5.8억] 앉아있는 여성, oil on canvas, 23.6 x 21.5cm [서울옥션(2018), 5.8억]

‘앉아 있는 여자’는 길거리에서 바구니를 앞에 두고 앉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야 했던 당시 서민들의 일상을 거친 질감으로 표현했습니다. 201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5.8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앉아 있는 여자’는 길거리에서 바구니를 앞에 두고 앉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살아야 했던 당시 서민들의 일상을 거친 질감으로 표현했습니다. 2018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5.8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유매, 1953, oil on hardboard, 29.3 x 16.7cm, 현대갤러리 소장 유매, 1953, oil on hardboard, 29.3 x 16.7cm, 현대갤러리 소장

화가 박수근(1914~1965)이 1953년 그린 ‘기름장수’ 그림 앞에서 아들 박성남(67)은 “윗집에 살던 기름장수 아주머니와 어머니가 편지를 읽는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박수근 화가는 서민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만의 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전후 한국 사회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의 삶은 어려웠습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족이 쓰던 물건을 하나둘씩 교환하던 이들은 어느새 도시에서 물건을 떼어내 막연한 생계를 이어가는 ‘기름장수’ 같은 상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박수근의 작품 ‘기름장수’의 여성은 뒷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옆을 응시하는 측면상과 뒤만 보이는 후면상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박수근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정면상을 그린 작품이라고 해도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심리상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희로애락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렷하게 보이는 감정이 하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외로움입니다. 무표정한 사람들을 둘러싼 텅 비어 있고 울퉁불퉁한 공간이 외로움을 말해줍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왔지만 텅 빈 공간으로 그들의 위치는 애매할 뿐이에요. 그가 창조한 혹은 묘사한 공간은 그들에게 상실과 결핍을 주었습니다. 화가 박수근(1914~1965)이 1953년 그린 ‘기름장수’ 그림 앞에서 아들 박성남(67)은 “윗집에 살던 기름장수 아주머니와 어머니가 편지를 읽는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박수근 화가는 서민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만의 형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전후 한국 사회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의 삶은 어려웠습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족이 쓰던 물건을 하나둘씩 교환하던 이들은 어느새 도시에서 물건을 떼어내 막연한 생계를 이어가는 ‘기름장수’ 같은 상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박수근의 작품 ‘기름장수’의 여성은 뒷모습을 보일 뿐입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옆을 응시하는 측면상과 뒤만 보이는 후면상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박수근의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정면상을 그린 작품이라고 해도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심리상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희로애락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렷하게 보이는 감정이 하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외로움입니다. 무표정한 사람들을 둘러싼 텅 비어 있고 울퉁불퉁한 공간이 외로움을 말해줍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왔지만 텅 빈 공간으로 그들의 위치는 애매할 뿐이에요. 그가 창조한 혹은 묘사한 공간은 그들에게 상실과 결핍을 주었습니다.

소금장수, 1956, 하드보드 상의 기름, 33 x 23.5 cm 소금장수, 1956, 하드보드 상의 기름, 33 x 23.5 cm

왜 화가들은 우리의 소재를 우리 방식으로 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외면하고 서양식으로만 그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똑같은 소재만 그린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생활이 그런데 왜 그걸 다 무시하려고 하지?” 이는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의 대표 화가 박수근 화백이 한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박수근 작품의 소재는 평범한 우리 이웃,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절구질하는 여자, 빨래터, 기름장수, 소금장수, 앉아있는 여자와 항아리, 실을 뽑는 여자, 시장의 여자 같은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그는 물건을 살 때는 큰 상점에서보다는 길거리나 손수레나 바구니 장사로 샀다. 바구니가게 여성들을 늘 불쌍히 여기고, 전후에 고생하는 이웃들을 늘 불쌍히 여기고, 그분의 그림 소재가 모두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의 말을 통해서도 왜 그가 이런 작품을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 화가들은 우리의 소재를 우리 방식으로 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외면하고 서양식으로만 그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똑같은 소재만 그린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생활이 그런데 왜 그걸 다 무시하려고 하지?” 이는 독학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의 대표 화가 박수근 화백이 한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박수근 작품의 소재는 평범한 우리 이웃,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절구질하는 여자, 빨래터, 기름장수, 소금장수, 앉아있는 여자와 항아리, 실을 뽑는 여자, 시장의 여자 같은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그는 물건을 살 때는 큰 상점에서보다는 길거리나 손수레나 바구니 장사로 샀다. 바구니가게 여성들을 늘 불쌍히 여기고, 전후에 고생하는 이웃들을 늘 불쌍히 여기고, 그분의 그림 소재가 모두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의 말을 통해서도 왜 그가 이런 작품을 그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앉아있는 여성,1963,oil on canvas,65x53cm 앉아있는 여성,1963,oil on canvas,65x53cm

앉아있는 여성, 1950, oil on canvas, 27.8 x 22cm 앉아있는 여성, 1950, oil on canvas, 27.8 x 22cm

제목은 ‘앉은 여인’인데, 한국전쟁 이후 민중의 고단한 삶을 투영한 작품 ‘소금장수’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앞에 놓여 있는 것도 소금처럼 보여요. 제목은 ‘앉은 여인’인데, 한국전쟁 이후 민중의 고단한 삶을 투영한 작품 ‘소금장수’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앞에 놓여 있는 것도 소금처럼 보여요.

노상, 나이 미상 노상, 나이 미상

노상의여인들, 1962년 하드보드에 기름, 20.9×26.7cm [서울옥션(2012.3), 6.2 억] 노상의여인들, 1962년 하드보드에 기름, 20.9×26.7cm [서울옥션(2012.3), 6.2 억]

이 그림은 2012년 3월 20일에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6억2000만원에 거래된 작품입니다. ‘길 위의 연인들’은 가로 26.7cm, 세로 20.9cm의 노트(A4용지) 정도의 화폭 안에 두 여인이 길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 한국 여성 특유의 자애와 중후함, 그리고 애틋함이 녹아 있는 박수근 작품 속에서 재질감 표현이 절정에 달한 1962년도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2012년 3월 20일에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6억2000만원에 거래된 작품입니다. ‘길 위의 연인들’은 가로 26.7cm, 세로 20.9cm의 노트(A4용지) 정도의 화폭 안에 두 여인이 길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 한국 여성 특유의 자애와 중후함, 그리고 애틋함이 녹아 있는 박수근 작품 속에서 재질감 표현이 절정에 달한 1962년도 그림입니다.

노상, 1964, 하드보드 상의 오일, 20.7 x 29.4 cm 노상, 1964, 하드보드 상의 오일, 20.7 x 29.4 cm

………………………………… 여자입니다 ………………………………… 여자입니다

절구질녀, 1954,oil on canvas,130 x 97cm 절구질녀,1954,oil on canvas,130 x 97cm

그의 그림에는 아기 엄마와 소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때는 엄마나 언니가 아이를 업고 키웠기 때문입니다. 박수근에게 아이는 생명의 귀중한 존재이자 미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업은 소녀(1953)’나 ‘절구질하는 여인(1954)’에게서는 엄마와 언니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절구질녀는 1954년 제3회 국전에 출품해 입선한 작품으로 대형 화폭에 아기를 업은 여자가 절구질하는 포즈를 밀도 높게 형상화했습니다. 이미 1930년대부터 박수근은 절구를 사용하는 여성을 즐겨 취급했습니다. 1936년에 제15회 선전에 입선한 수채화 ‘일하는 여자’와 1936년에 제17회 선전에 입선한 ‘농가의 여자’도 절구질하는 여자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또 이 작품에 앞서 1952년에 소품으로 그린 절구를 쓰는 여성도 아이를 업고 절구를 쓰는 여성의 옆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박수근은 ‘바구니를 메고 가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 등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즐겨 그리는데, 특히 ‘절구질 여인’을 많이 그린 이유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녹아있는 향토적인 소재이자 사라져가는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아기 엄마와 소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때는 엄마나 언니가 아이를 업고 키웠기 때문입니다. 박수근에게 아이는 생명의 귀중한 존재이자 미래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업은 소녀(1953)’나 ‘절구질하는 여인(1954)’에게서는 엄마와 언니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절구질녀는 1954년 제3회 국전에 출품해 입선한 작품으로 대형 화폭에 아기를 업은 여자가 절구질하는 포즈를 밀도 높게 형상화했습니다. 이미 1930년대부터 박수근은 절구를 사용하는 여성을 즐겨 취급했습니다. 1936년에 제15회 선전에 입선한 수채화 ‘일하는 여자’와 1936년에 제17회 선전에 입선한 ‘농가의 여자’도 절구질하는 여자를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또 이 작품에 앞서 1952년에 소품으로 그린 절구를 쓰는 여성도 아이를 업고 절구를 쓰는 여성의 옆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박수근은 ‘바구니를 메고 가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 등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즐겨 그리는데, 특히 ‘절구질 여인’을 많이 그린 이유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녹아있는 향토적인 소재이자 사라져가는 전통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구질녀, 1956, oil on canvas,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절구질녀, 1956, oil on canvas,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절구질녀, 1957, oil on canvas, 38 x 27cm 절구질녀, 1957, oil on canvas, 38 x 27cm

두 여인, 1960년대 하드보드 위의 오일, 27.7 x21cm 두 여인, 1960년대 하드보드 위의 오일, 27.7 x 21 cm

쉬고 있는 여자, 1959 쉬고 있는 여자, 1959

세 여성, 1960s, oil on wood, 21 x 46.4 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세 여성, 1960s, oil on wood, 21 x 46.4 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3명의 여성, 1960s, oil on canavas, 16.5 x 33.5cm 3 명의 여성, 1960s, oil on canavas, 16.5 x 33.5cm

여인들, 1960년대 캔버스에 기름, 16.5 x33.5cm 여인들, 1960년대 캔버스에 기름, 16.5 x 33.5 cm

빨래터.

세탁장, 1950, Oil on canvas, 50.5 x 111.5cm 세탁장, 1950, Oil on canvas, 50.5 x 111.5cm

사진은 작게 나오지만 ‘빨래터’ 안에서 사이즈가 크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려진 시기도 아래에 소개된 다른 작품들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은 작게 나오지만 ‘빨래터’ 안에서 사이즈가 크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려진 시기도 아래에 소개된 다른 작품들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빨래터터(Washherwomen by tream), 1954년 캔버스에 기름, 15×31cm 빨래래터(Washherwomen by tream), 1954년 캔버스에 기름, 15×31cm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왼쪽 끝에 있는 여성이 다른 증장인물과 달리 선 자세로 세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왼쪽 끝에 있는 여성이 다른 증장인물과 달리 선 자세로 세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탁소, 1954~1956, oil on canvas, 37 x 72cm, / Seoul Auction(2007), 42억5천만원 세탁소, 1954~1956, oil on canvas, 37 x 72cm, / Seoul Auction(2007), 42억5천만원

빨래터, 1956~58년 경, 캔버스에 기름, 15.8 x 33.4cm, 개인 컬렉션 빨래터, 1956~58년 경, 캔버스에 기름, 15.8 x 33.4cm, 개인 컬렉션

박수근은 대표작이 된 빨래터의 그림을 몇 점 그렸습니다. 그 중 하나인 ‘빨래터(1950년대)’는 2007년 당시 한국 작가 중 경매 최고가(45억2000만원)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빨래터를 잘 그린 것은 아내 김복순을 처음 본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각선 구도에 각기 다른 여성의 뒷모습에 노란색, 분홍색, 옥색 등 색을 입혀 생동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소개한 4호(15.833.4cm) 크기의 빨래터는 1975년 문현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10주기 기념전에 나온 것으로 개인이 75만원에 구입해 당시까지 보유해 온 작품입니다. 세탁하는 여성들의 옷에 보이는 파스텔톤의 핑크, 노랑, 파랑, 빨강 등 비교적 밝고 선명한 색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6점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빨래터’가 많은 것은 박수근 화백이 좋아하는 소재를 여러 번 다시 그리는 취향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서양의 대가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 창신동 박수근은 대표작이 된 빨래터의 그림을 몇 점 그렸습니다. 그 중 하나인 ‘빨래터(1950년대)’는 2007년 당시 한국 작가 중 경매 최고가(45억2000만원)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빨래터를 잘 그린 것은 아내 김복순을 처음 본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각선 구도에 각기 다른 여성의 뒷모습에 노란색, 분홍색, 옥색 등 색을 입혀 생동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소개한 4호(15.833.4cm) 크기의 빨래터는 1975년 문현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10주기 기념전에 나온 것으로 개인이 75만원에 구입해 당시까지 보유해 온 작품입니다. 세탁하는 여성들의 옷에 보이는 파스텔톤의 핑크, 노랑, 파랑, 빨강 등 비교적 밝고 선명한 색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는 6점 정도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비슷한 분위기의 ‘빨래터’가 많은 것은 박수근 화백이 좋아하는 소재를 여러 번 다시 그리는 취향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서양의 대가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 창신동

골목 안 1950년대 oil on canvas, 80.3 x 53 cm 골목 안 1950년대 oil on canvas, 80.3 x 53 cm

작품 <골목 안>은 제가 경험했던 유년의 골목 풍경과는 조금 다릅니다. 골목 안에 나무가 들어가 있는 풍경이라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 추억 속에 존재했던 서울 외곽 골목은 그림 속 모습보다 상당히 좁고 두세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와집이 서 있는 골목 안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추억을 소환하는 데 유용한 것 같습니다. 작품 <골목 안>은 제가 경험했던 유년의 골목 풍경과는 조금 다릅니다. 골목 안에 나무가 들어가 있는 풍경이라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 추억 속에 존재했던 서울 외곽 골목은 그림 속 모습보다 상당히 좁고 두세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와집이 서 있는 골목 안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추억을 소환하는 데 유용한 것 같습니다.

집골목(창신동 풍경), 1960/Seoul Auction on line(2019), 5.3억 집골목(창신동 풍경), 1960/Seoul Auction on line(2019), 5.3억

……………………………. 古木(후루끼)와 여자 ……………………………. 古木(후루끼)와 여자

나무와 두 그루의 여자 나무와 두 그루의 여자

木と女、1956, 하드보드에 오일, 27 x 19.5cm 木と女、1956, 하드보드에 오일, 27 x 19.5cm

나무와 두 여자, 연도 미상, Oil on Canvas, 33 x 21 cm, Private Collection 나무와 두 여자, 연도 미상, Oil on Canvas, 33 x 21 cm, Private Collection

나무와 두 여인, 1962, oil on canvas, 130 x 89 cm, 리움 미술관 나무와 두 여인, 1962, oil on canvas, 130 x 89 cm, 리움 미술관

리움미술관 소장품인 ‘고목과 여자’, ‘나무와 두 여자’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나무와 두 여인’은 비슷한 구도로 그린 세 작품이 존재합니다. 어느 작품에서나 아기를 업은 여인 함지박을 머리에 얹은 여인과 함께 나무 한 그루가 등장합니다. 가운데 있는 나무는 마치 세상에 나온 것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여기서 아기를 업은 어머니와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가는 여성은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 그림에서 아이에게 등을 내미는 어머니는 박수근의 아내라고도 합니다. 리움미술관 소장품인 ‘고목과 여자’, ‘나무와 두 여자’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나무와 두 여인’은 비슷한 구도로 그린 세 작품이 존재합니다. 어느 작품에서나 아기를 업은 여인 함지박을 머리에 얹은 여인과 함께 나무 한 그루가 등장합니다. 가운데 있는 나무는 마치 세상에 나온 것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여기서 아기를 업은 어머니와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가는 여성은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 그림에서 아이에게 등을 내미는 어머니는 박수근의 아내라고도 합니다.

고목과 여인, 53x40cm 고목과 여인,53x40cm

고목과 여성, 1960년대 중반 캔버스에 유채, 45×38cm, 리움미술관 소장 고목과 여성, 1960년대 중반 캔버스에 유채, 45×38cm, 리움미술관 소장

‘고목과 여자’는 큰 고목을 전면에 대담하게 배치하고 그 뒤에 멀리 보이는 인물을 그린 구도의 작품입니다.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표현에 따르면 “박수근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간결한 구도의 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박수근 전성기의 작품인 ‘고목과 여’는 가장 큰 특징으로 화강암 표면에 새겨진 마애불을 보는 질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을 흙의 문화라고 한다면 일본은 나무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탑을 가지고 있어도 중국은 흙으로 만든 전탑이고 일본은 목탑의 나라입니다. 한편 한반도는 석탑의 나라입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이 상징하듯이 한국미술은 석조문화의 전통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수근은 화강암 파편을 만지며 캔버스 위에 돌의 질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화가는 실제로 경주 답사를 하고 마애불 탁본도 했으며 이를 미국 후원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석조문화의 전통을 체득한 박수근은 돌의 질감을 구현한 회화 작법으로 한국화단에서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전 관장, 이렇게 한국 전통 석조문화를 터득한 그는 한국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를 상징하는 고목과 생활력을 드러내는 여성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는 작업을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목과 여자’는 큰 고목을 전면에 대담하게 배치하고 그 뒤에 멀리 보이는 인물을 그린 구도의 작품입니다. 김예진 학예연구사의 표현에 따르면 “박수근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간결한 구도의 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박수근 전성기의 작품인 ‘고목과 여’는 가장 큰 특징으로 화강암 표면에 새겨진 마애불을 보는 질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을 흙의 문화라고 한다면 일본은 나무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탑을 가지고 있어도 중국은 흙으로 만든 전탑이고 일본은 목탑의 나라입니다. 한편 한반도는 석탑의 나라입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이 상징하듯이 한국미술은 석조문화의 전통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박수근은 화강암 파편을 만지며 캔버스 위에 돌의 질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화가는 실제로 경주 답사를 하고 마애불 탁본도 했으며 이를 미국 후원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석조문화의 전통을 체득한 박수근은 돌의 질감을 구현한 회화 작법으로 한국화단에서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전 관장, 이렇게 한국 전통 석조문화를 터득한 그는 한국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를 상징하는 고목과 생활력을 드러내는 여성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는 작업을 즐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목고 억과 아이들, 1964년 하드보드에 기름, 30×21cm [서울옥션(2012.12), 6.5 억] 목고 억과 아이들, 1964년 하드보드에 기름, 30×21cm [서울옥션(2012.12), 6.5 억]

1964년 제작된 ‘고목과 아이들’은 박수근 화백의 만년 제작기법이 잘 드러나 있으며, 2014년 1월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인 2012년 12월 서울옥션에서 이 작품은 6.5억원에 낙찰됐고, 2016년 5월 29일 홍콩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제19회 홍콩 경매에서 480만 홍콩달러(약 7억3500만원)에 낙찰돼 낙찰가를 경신한 바 있습니다. 1964년 제작된 ‘고목과 아이들’은 박수근 화백의 만년 제작기법이 잘 드러나 있으며, 2014년 1월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 ‘박수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인 2012년 12월 서울옥션에서 이 작품은 6.5억원에 낙찰됐고, 2016년 5월 29일 홍콩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제19회 홍콩 경매에서 480만 홍콩달러(약 7억3500만원)에 낙찰돼 낙찰가를 경신한 바 있습니다.

두 나무와 두 여인, 1964 / K-Auction (2021.1), 3억1천만원 두 나무와 두 여인, 1964 / K-Auction (2021.1), 3억1천만원

‘두 나무와 두 여인’은 박수근 화백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64년 제작된 작품입니다. 특유의 제약된 색채와 50대부터 나타나 60년대 초반에 이르러 완숙하게 표현된 특유의 입체적 마티에르(질감)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두 나무와 두 여인’은 박수근 화백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64년 제작된 작품입니다. 특유의 제약된 색채와 50대부터 나타나 60년대 초반에 이르러 완숙하게 표현된 특유의 입체적 마티에르(질감)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휴식, 1960, 캔버스에 유채, 33×24.3cm [K옥션, 10억5천만원] 휴식, 1960, 캔버스에 유채, 33×24.3cm [K옥션, 10억5천만원]

나무와 여자 1964 나무와 여자 1964

나무와 여자 나무와 여자

이 작품은 BTS RM이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진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BTS RM이 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진 그림입니다.

나무 아래, 1961, 37.5×26.5cm 나무 아래, 1961, 37.5×26.5cm

박수근의 <나무 아래(37.5×26.5㎝)>는 작가의 회화적 기량이 절정에 달한 1961년 작품입니다. 앙상한 나목을 앞세워 공간감을 만들면서 명암과 원근감이 거의 배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저고리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색감 속에서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을 주로 그려온 작가가 밭을 일구는 세 농부를 통해 일하는 남성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박수근의 <나무 아래(37.5×26.5㎝)>는 작가의 회화적 기량이 절정에 달한 1961년 작품입니다. 앙상한 나목을 앞세워 공간감을 만들면서 명암과 원근감이 거의 배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저고리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전반적으로 단조로운 색감 속에서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을 주로 그려온 작가가 밭을 일구는 세 농부를 통해 일하는 남성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나무아래 196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나무아래 196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나무 아래’에는 큰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성, 오른쪽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성과 나무는 단순한 형태와 굵은 윤곽선으로 묘사하며, 갈색 색조의 색감과 거친 질감이 강조되어 작가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줍니다. 우뚝 솟은 나무에서 뻗은 잔가지와 연두색 잎은 삶에 대한 굳은 의지와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 ‘나무 아래’에는 큰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성, 오른쪽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성과 나무는 단순한 형태와 굵은 윤곽선으로 묘사하며, 갈색 색조의 색감과 거친 질감이 강조되어 작가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줍니다. 우뚝 솟은 나무에서 뻗은 잔가지와 연두색 잎은 삶에 대한 굳은 의지와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목 / K-Auction (2021.1), 9천만원 목 / K-Auction (2021.1), 9천만원

이 작품은 크레파스로 그려진 박수근 화백의 희귀한 작품으로 은은하고 투명한 색채로 나무의 생명력을 표현했습니다 ……………………………….. 농악 이 작품은 크레파스로 그려진 박수근 화백의 희귀한 작품으로 은은하고 투명한 색채로 나무의 생명력을 표현했습니다 ……………………………….. 농악

농악,하드보드위의오일,20.7 x 29.4 cm 농악, 하드 보드 위의 오일, 20.7 x 29.4 cm

농악, 1960년대 oil on hardboard, 20.7 x 29.4cm [서울옥션(2007.3.9), 20억] 농악, 1960년대 oil on hardboard, 20.7 x 29.4cm [서울옥션(2007.3.9), 20억]

‘농악’은 박수근이 농악을 소재로 그린 작품 중 대작(?)에 속합니다. 작품 <농악>은 농악대 4명의 움직임을 간결하고 소박한 선으로 그려낸 10호 크기의 작품으로 인물을 상하 2단으로 배치하고 상하 인물의 움직임을 반대로 돌려 화면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박수근 특유의 질감을 앞세운 화풍 때문에 육안으로 인물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의 배경이 생략되어 있어 인물 간의 원근감이나 입체감을 배제하고 인물은 간략한 선묘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거친 질감, 단단한 바위에 새겨진 듯한 선묘는 마치 풍화된 암각화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농악’은 박수근이 농악을 소재로 그린 작품 중 대작(?)에 속합니다. 작품 <농악>은 농악대 4명의 움직임을 간결하고 소박한 선으로 그려낸 10호 크기의 작품으로 인물을 상하 2단으로 배치하고 상하 인물의 움직임을 반대로 돌려 화면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박수근 특유의 질감을 앞세운 화풍 때문에 육안으로 인물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의 배경이 생략되어 있어 인물 간의 원근감이나 입체감을 배제하고 인물은 간략한 선묘로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거친 질감, 단단한 바위에 새겨진 듯한 선묘는 마치 풍화된 암각화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악, 1963,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악, 1963,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농악, 1962, 하드보드에 유채, 59.3 x 121cm, 개인소장농악, 1962, 하드보드에 유채, 59.3 x 121cm, 개인소장

귀로. 귀로.

귀로 1964, 42.5x52cm, 캘리포니아 USC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 귀로 1964, 42.5x52cm, 캘리포니아 USC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

<귀로>는 일반 그림처럼 어두운 회색, 회색이 배경입니다. 행상을 마치고 귀가하는 세 여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오래된 시멘트 바닥의 느낌에 평면상의 침잠한 흰색과 회색의 굵은 톤, 박수근만이 낼 수 있는 색에 한국인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여자의 머리 위에는 하얀 것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쌀인지 보리쌀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이고, 여자의 등에 업힌 아이는 잠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세 여자는 무심코 서 있는 것 같아도 삶을 응시하는 태도에는 진지함이 묻어납니다. 검은색 고무 신발과 흰 버선이 겨울 나무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얼굴 표정이 없어요. 때로는 눈, 코, 입도 생략됩니다. 패서디나 소재 USC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PAM)은 오랜 후원자인 허브누파(Herb Nootbaar) 온으로부터 박수근 작품 <귀로(Homeward Bound)>를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습니다. 기증자의 죽은 아내 도로시 누트바(Dorothy Nootbar)는 약 40년 전 뉴욕에서 박수근의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귀로>는 일반 그림처럼 어두운 회색, 회색이 배경입니다. 행상을 마치고 귀가하는 세 여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오래된 시멘트 바닥의 느낌에 평면상의 침잠한 흰색과 회색의 굵은 톤, 박수근만이 낼 수 있는 색에 한국인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여자의 머리 위에는 하얀 것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쌀인지 보리쌀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이고, 여자의 등에 업힌 아이는 잠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세 여자는 무심코 서 있는 것 같아도 삶을 응시하는 태도에는 진지함이 묻어납니다. 검은색 고무 신발과 흰 버선이 겨울 나무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얼굴 표정이 없어요. 때로는 눈, 코, 입도 생략됩니다. 패서디나 소재 USC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PAM)은 오랜 후원자인 허브누파(Herb Nootbaar) 온으로부터 박수근 작품 <귀로(Homeward Bound)>를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습니다. 기증자의 죽은 아내 도로시 누트바(Dorothy Nootbar)는 약 40년 전 뉴욕에서 박수근의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귀로(Way Back Home), 1960년 하드보드 상의 기름, 29.3 x 22cm / 서울옥션(2008.6), 10.6 억 귀로(Way Back Home), 1960년 하드보드 상의 기름, 29.3 x 22cm / 서울옥션(2008.6), 10.6 억

귀로, 1964, 하드보드 위의 오일, 16.4 x 34.6cm 입니다 귀로, 1964, 하드보드 위의 오일, 16.4 x 34.6c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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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1964년 하드보드 상의 오일, 23.3 x 14.2cm [K-Auction (2006.12.13), 4.95 억] 귀로, 1964년 하드보드 상의 오일, 23.3 x 14.2cm [K-Auction (2006.12.13), 4.95 억]

귀로, 1964, 하드보드 상의 오일, 23.4 x 14.2cm 입니다 귀로, 1964, 하드보드 상의 오일, 23.4 x 14.2cm 입니다

귀로, 1964 귀로, 1964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화가마다 나름대로 빠져드는 주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 같은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 많습니다. 박수근의 경우 ‘귀로’가 그런 사례에 해당합니다. 귀로를 제작한 1964년은 그가 죽기 1년 전이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고향을 그리워하는 예가 있습니다. 어쩌면 박수근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귀로> 주제로 몇 편의 작품을 남긴 것도 그런 관계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는 지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작품 제작을 강행했어요. 이 작품에서 박수근은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동생과 누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면에 고목을 크게 배치하고 왼쪽 아래로 길을 걷는 어린 동생과 누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화면 상단 끝까지 나뭇가지를 시원하게 뻗은 높은 고목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 아래로 한 손에는 어린 동생의 손을, 다른 손에는 함지를 받쳐 들고 발걸음을 옮기는 누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구성은 고목과 인물로 매우 단순합니다. 화면의 중심을 잡거나 좌우, 상하의 균형을 잡기 위해 뿌리가 굵은 나무를 잡은 것 같습니다. 중심이 되는 굵은 줄기의 자의적인 형태에서 강하게 내재된 생명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뚝 서 있는 나무 표상에서는 가난과 고뇌를 딛고 좌절하지 않았던 작가의 자화상이 오버랩됩니다. 어린 동생과 언니의 상의를 푸르고 붉게 물들여서 채색이 절제된 화면에 생기를 주고 있습니다.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화가마다 나름대로 빠져드는 주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 같은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 많습니다. 박수근의 경우 ‘귀로’가 그런 사례에 해당합니다. 귀로를 제작한 1964년은 그가 죽기 1년 전이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고향을 그리워하는 예가 있습니다. 어쩌면 박수근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귀로> 주제로 몇 편의 작품을 남긴 것도 그런 관계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는 지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작품 제작을 강행했어요. 이 작품에서 박수근은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동생과 누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면에 고목을 크게 배치하고 왼쪽 아래로 길을 걷는 어린 동생과 누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화면 상단 끝까지 나뭇가지를 시원하게 뻗은 높은 고목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 아래로 한 손에는 어린 동생의 손을, 다른 손에는 함지를 받쳐 들고 발걸음을 옮기는 누나의 모습이 보입니다. 구성은 고목과 인물로 매우 단순합니다. 화면의 중심을 잡거나 좌우, 상하의 균형을 잡기 위해 뿌리가 굵은 나무를 잡은 것 같습니다. 중심이 되는 굵은 줄기의 자의적인 형태에서 강하게 내재된 생명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뚝 서 있는 나무 표상에서는 가난과 고뇌를 딛고 좌절하지 않았던 작가의 자화상이 오버랩됩니다. 어린 동생과 언니의 상의를 푸르고 붉게 물들여서 채색이 절제된 화면에 생기를 주고 있습니다.

길, 1964, 하드보드 상의 오일, 31 x 18cm 길, 1964, 하드보드 상의 오일, 31 x 18cm

귀로, 1965년 하드보드 상의 오일, 20.5 x 36.5cm [뉴욕 크리스티(2008.3), 65.7 만달러] 입니다 귀로, 1965년 하드보드 상의 오일, 20.5 x 36.5cm [뉴욕 크리스티(2008.3), 65.7 만달러] 입니다

노인, 노인, 노옹, 은거, 로틀, 옹, 노체. 노인, 노인, 노옹, 은거, 로틀, 옹, 노체.

노인과 소녀, 1959년 노인과 소녀, 1959년

노인, 1961 노인, 1961

1962년 미국 미시간 대학 미술관 1962년 미국 미시간 대학 미술관

『노인들의 대화』는 미국 미시간 대학 교수인 조셉 리(1918~2009)가 1962년 대학원생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해 간 작품입니다. 그동안 작품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셉이 타계한 뒤 미시간대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공개됐습니다. 『노인들의 대화』는 미국 미시간 대학 교수인 조셉 리(1918~2009)가 1962년 대학원생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해 간 작품입니다. 그동안 작품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셉이 타계한 뒤 미시간대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공개됐습니다.

대화, 1960, 캔버스 위의 기름, 18.5 x 32.5 cm 대화, 1960, 캔버스 위의 기름, 18.5 x 32.5 cm

대화, 1960년대, 하드보드 상의 오일, 22 x 27 cm / K-Auction (2016.3), 5.1 억 대화, 1960년대, 하드보드 상의 오일, 22 x 27 cm / K-Auction (2016.3), 5.1 억

손자.

할머니와 손자 1964, 45.5 x 37.9 cm, Private Collection 할머니와 손자 1964, 45.5 x 37.9cm, Private Collection

‘할머니와 손자’는 유화 반세기 만에 개봉한 작품입니다. 1960~1964년 캔버스 유채 작품으로 추정되며 작품에 손자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미소가 그립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할머니와 손자’는 유화 반세기 만에 개봉한 작품입니다. 1960~1964년 캔버스 유채 작품으로 추정되며 작품에 손자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미소가 그립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1964, oil on canvas, 146 x 97 cm, 국립현대미술관 할아버지와 손자, 1964, oil on canvas, 146 x 97 cm, 국립현대미술관

이 작품은 박수근 화백이 타개하기 1년 전인 1964년 제작돼 제13회 국전에 출품됐습니다. 화단에서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이 없었던 그에게 국전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의식해야 하는 유일한 발표의 장이었습니다. 그렇게 국전에 출품한 작품이라 그런지 ‘할아버지와 손자’는 비교적 큰 사이즈의 탄탄한 구성력과 뛰어난 조형성을 가지고 있어 그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소재는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이웃들입니다. 주제는 조손간의 끈끈한 혈육의 정과 함께 이웃간의 고소하고 따뜻한 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은 작품 속에서 비현실적인 소재나 과장된 주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흰 무명 치마저고리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의 서민층 인물들이며, 그 외의 요소들도 모두 그가 생전에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경험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같은 해 ‘할아버지와 손자’와 같은 세트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작품도 제작되었습니다 ……………………………….. 집, 마을 이 작품은 박수근 화백이 타개하기 1년 전인 1964년에 제작되어 제13회 국전에 출품되었습니다. 화단에서 특별한 학연이나 지연이 없었던 그에게 국전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의식해야 하는 유일한 발표의 장이었습니다. 그렇게 국전에 출품한 작품이라 그런지 ‘할아버지와 손자’는 비교적 큰 사이즈의 탄탄한 구성력과 뛰어난 조형성을 가지고 있어 그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품의 소재는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이웃들입니다. 주제는 조손간의 끈끈한 혈육의 정과 함께 이웃간의 고소하고 따뜻한 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은 작품 속에서 비현실적인 소재나 과장된 주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흰 무명 치마저고리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의 서민층 인물들이며, 그 외의 요소들도 모두 그가 생전에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경험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같은 해 ‘할아버지와 손자’와 같은 세트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작품도 제작되었습니다 ……………………………….. 집, 마을

초가집, 1963,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초가집, 1963,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초가집, 1960s, 박수근 스승, 오덕영 손녀 소장 초가집, 1960s, 박수근 스승, 오덕영 손녀 소장

1960년대 초에 그려진 ‘초가집’은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이었지만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963년 작 ‘초가집’과 소재, 구도, 하드보드지 화폭 재료 등이 거의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특유의 화강암질 마티에르가 보이지 않고 분방하거나 개운하지 않은 색층의 변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박수근 화가가 세상에 알려진 대로 화폭의 배경을 거친 암석 질감만으로 덮지 않고 캔버스 재료에 따라 능숙한 기법으로 변주를 모색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60년대 초에 그려진 ‘초가집’은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이었지만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963년 작 ‘초가집’과 소재, 구도, 하드보드지 화폭 재료 등이 거의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특유의 화강암질 마티에르가 보이지 않고 분방하거나 개운하지 않은 색층의 변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박수근 화가가 세상에 알려진 대로 화폭의 배경을 거친 암석 질감만으로 덮지 않고 캔버스 재료에 따라 능숙한 기법으로 변주를 모색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우물가는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다시 개최된 1953년 서양화부에 출품하여 특선을 획득한 작품입니다. 박수근은 국전을 겨냥한 대작을 준비하면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배어 있는 초가집을 선택하여 정통 화법을 따르고 질감에만 약간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농촌의 풍경은 박수근이 양구시대부터 즐겨 그리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관심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화폭에 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작품에서 소박한 주제와 굵고 뚜렷한 선의 윤곽, 하얀 회갈색 황갈색 주조의 두꺼운 질감에 명암과 원근감이 거의 배제된 특징적인 표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수근은 작품에서 황토벽에 짚을 얹은 초가집 마당에서 우물을 떠거나 빨래를 하는 여성과 소녀들, 그리고 빨래가 널려 있는 마당 한 켠에 닭이 먹이를 쪼고 있는 일상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의 특징은 형태가 아닌 색채에서 묻어나는 향토적인 서정과 평온한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친근한 정감이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였습니다. 우물가는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다시 개최된 1953년 서양화부에 출품하여 특선을 획득한 작품입니다. 박수근은 국전을 겨냥한 대작을 준비하면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배어 있는 초가집을 선택하여 정통 화법을 따르고 질감에만 약간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농촌의 풍경은 박수근이 양구시대부터 즐겨 그리던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관심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화폭에 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작품에서 소박한 주제와 굵고 뚜렷한 선의 윤곽, 하얀 회갈색 황갈색 주조의 두꺼운 질감에 명암과 원근감이 거의 배제된 특징적인 표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박수근은 작품에서 황토벽에 짚을 얹은 초가집 마당에서 우물을 떠거나 빨래를 하는 여성과 소녀들, 그리고 빨래가 널려 있는 마당 한 켠에 닭이 먹이를 쪼고 있는 일상의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의 특징은 형태가 아닌 색채에서 묻어나는 향토적인 서정과 평온한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친근한 정감이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였습니다.

물이, 1954년 하드보드 상의 기름, 19×24cm, 개인 컬렉션 물이, 1954년 하드보드 상의 기름, 19×24cm, 개인 컬렉션

위의 유화로 그린 <우물가 회의>와 비교하여 작은 하드보드지에 그린 이 작품은 전제구도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에 있던 닭이 없어진 것만 달라요. 마티에르(울퉁불퉁한 질감)는 전체에 러프한 인상을 줍니다. 위의 유화로 그린 <우물가 회의>와 비교하여 작은 하드보드지에 그린 이 작품은 전제구도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에 있던 닭이 없어진 것만 달라요. 마티에르(울퉁불퉁한 질감)는 전체에 러프한 인상을 줍니다.

춘일,1950년대,캔버스상의 기름,24×33.5cm 춘일,1950년대,캔버스상의 기름,24×33.5cm

가스가, 1950년대 후반, oil on hardboard, 41x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가스가, 1950년대 후반, oil on hardboard, 41x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가스가, 1950년대 후반, oil on hardboard, 41x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가스가, 1950년대 후반, oil on hardboard, 41x57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마을, 1963, oil on canvas / K-Auction (2021.3), 5.5억원 마을, 1963, oil on canvas / K-Auction (2021.3), 5.5억원

작품 ‘마을’에서도 박수근 화백 특유의 투박한 질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 채의 초가집이 즐비한 동리길에서 보따리를 든 채 지나가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멀리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소박한 마을의 풍경입니다. 작품 ‘마을’에서도 박수근 화백 특유의 투박한 질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 채의 초가집이 즐비한 동리길에서 보따리를 든 채 지나가는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멀리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소박한 마을의 풍경입니다.

풍경 1963년 하드보드 위의 오일, 25.4 x36.8cm마를 풍경, 1963년 하드보드 상의 오일, 25.4 x 36.8 cm

마을의 풍경, 1963, oil on wood, 24 x 39 cm, 한국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마을의 풍경, 1963, oil on wood, 24 x 39 cm, 한국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나무가 있는 마을 196415×24.5cm [K-Auction (2006.1), 6.6억] 나무가 있는 거리 1964 15×24.5cm [K-Auction(2006.1), 6.6億]

마을 풍경, oil on canvas, 22x16cm 마을 풍경, oil on canvas, 22x1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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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oadside (a girl carrying a baby on her back) by the roadside (a girl carrying a baby on her back)

캔버스 道端で、1954、 오일 107.5 x 53cm 캔버스 道端で、1954、 오일 107.5 x 53cm 캔버스 、 오일

작품 ‘길가에서’는 화가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거주했던 창신동에 살면서 제작한 것으로 아기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향토색 짙은 색감과 뚜렷한 윤곽선, 특유의 우들투들한 질감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세상일을 걱정하지 않는 아기 동생은 아내의 집에 푹 싸여 얼굴을 파묻고 잠이 들었습니다. 단발머리 소녀는 누군가를, 아마도 음식을 찾으러 간 아버지나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녀의 모습은 당대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공을 뛰어넘어 눈물처럼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그림에 담긴 소녀의 눈빛과 표정, 모습에서 지친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폭에는 고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화강암처럼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설정을 통해 시대적 감성을 집약한 점에서 박수근 예술의 전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박수근 화백은 이처럼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내며 시대적 감성을 자극하는 데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작품 ‘길가에서’는 화가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거주했던 창신동에 살면서 제작한 것으로 아기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향토색 짙은 색감과 뚜렷한 윤곽선, 특유의 우들투들한 질감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세상일을 걱정하지 않는 아기 동생은 아내의 집에 푹 싸여 얼굴을 파묻고 잠이 들었습니다. 단발머리 소녀는 누군가를, 아마도 음식을 찾으러 간 아버지나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녀의 모습은 당대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공을 뛰어넘어 눈물처럼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그림에 담긴 소녀의 눈빛과 표정, 모습에서 지친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폭에는 고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화강암처럼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설정을 통해 시대적 감성을 집약한 점에서 박수근 예술의 전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박수근 화백은 이처럼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내며 시대적 감성을 자극하는 데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아기를 업은 여자아이와 아이들, 1950년대 중반, 45x37cm 아기를 업은 여자아이와 아이들, 1950년대 중반, 45x37cm

나물파는소녀들, 1961, oil on hardboard, 15.1 × 19.5cm / Seoul Auction (2017.9), 3.1억 나물파는소녀들, 1961, oil on hardboard, 15.1 × 19.5cm / Seoul Auction (2017.9), 3.1억

그림그리는 소녀들 1961 oil on canvas 27.3 x 40.9cm 그림을 그리는 소녀들 1961 oil on canvas 27.3 x 40.9cm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1965, oil on canvas, 23.1 x 31.2cm / K-Auction (2021.12), 6.6억원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1965, oil on canvas, 23.1 x 31.2cm / K-Auction (2021.12), 6.6억원

소와 유동, 1962, oil on canvas, 116.8 x 72.3cm 소와 유동, 1962, oil on canvas, 116.8 x 72.3cm

유동, 1963, 캔버스에 기름, 96.8 x 130.2cm 유동, 1963, 캔버스에 기름, 96.8 x 130.2 cm

박수근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정착한 서민들의 일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길가나 시장, 노점 등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즐겨 그린 반면 작품 ‘유동’은 아이들을 둘러싼 농가의 집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 전체에 감도는 잔잔한 색감,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감,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시선 등에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애정이 감지됩니다. 박수근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정착한 서민들의 일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길가나 시장, 노점 등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즐겨 그린 반면 작품 ‘유동’은 아이들을 둘러싼 농가의 집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 전체에 감도는 잔잔한 색감,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감,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시선 등에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애정이 감지됩니다.

유동(줄넘기를 하는 아이들), 1963, oil on canvas, 41.3 x 31.8cm,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유동(줄넘기를 하는 아이들), 1963, oil on canvas, 41.3 x 31.8cm,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줄넘기 하는 아이들>은 2018년 3월 경매를 거쳐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이 4.6억원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습니다.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로 알려진 이 작품의 원제는 ‘유동’입니다. 여자아이 3명과 남자아이 4명이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6호(41.3×31.8cm)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습니다. 박수근 화백 특유의 요철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며 밝은 색채로 경쾌함을 살린 작품입니다. <줄넘기 하는 아이들>은 2018년 3월 경매를 거쳐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이 4.6억원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습니다.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로 알려진 이 작품의 원제는 ‘유동’입니다. 여자아이 3명과 남자아이 4명이 줄넘기를 하는 모습을 6호(41.3×31.8cm)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렸습니다. 박수근 화백 특유의 요철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며 밝은 색채로 경쾌함을 살린 작품입니다.

줄넘기를 하는 소녀들 1964 oil on hardboard, 92.×16.5 cm 줄넘기를 하는 소녀들 1964 oil on hardboard, 92.x 16.5cm

작품 ‘줄넘기를 하는 소녀들’은 박수근 화백의 최말년기인 1964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당시 박수근 화백은 한쪽 눈 실명과 백내장 등으로 시력이 악화된 상태였는데, 작품이 흐릿하게 묘사된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품에는 골목을 누비는 순수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독특한 조형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품 ‘줄넘기를 하는 소녀들’은 박수근 화백의 최말년기인 1964년에 제작된 것입니다. 당시 박수근 화백은 한쪽 눈 실명과 백내장 등으로 시력이 악화된 상태였는데, 작품이 흐릿하게 묘사된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품에는 골목을 누비는 순수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독특한 조형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계집애. 계집애.

아기를 업은 소녀, 1960년대, oil on hardboard, 34 x 17 cm 아기를 업은 소녀, 1960년대, oil on hardboard, 34 x 17 cm

아기 소녀, 16×26.6cm 아기 소녀, 16×26.6cm

박수근의 작품에는 아기를 보는 소녀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그림 가운데에 배경도 없이 아기를 업은 소녀만 서 있습니다. 소녀는 흰 포대기로 아기를 껴안고, 아기를 지탱하기 위해 손은 뒷짐을 진 채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앞머리를 눈썹 위에 곱게 자른 단발머리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흰 상의와 거무스름한 긴 치마, 치마 밑으로 드러난 가냘픈 종아리, 그리고 검은 고무신의 코가 살짝 들리는 것까지 어느 시대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모습입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고아가 되거나 부모님이 계셨더라도 먹고 살기에 너무 바빠서 ‘아이가 아이를 보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개 큰언니가 일을 나간 엄마 대신 아기 여동생을 키우고 있었어요. 아이를 돌보는 것은 힘들지만 그림 속 소녀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박수근의 절제된 성묘가 아이가 그린 그림 같으면서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의 밝은 표정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검고 가는 선으로 단순화해서 그린 소녀의 표정이 너무 다정하고 대상을 향한 화가의 따뜻한 마음까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박수근 작품 속 소녀들은 대부분 단발머리입니다. 실제 당시 소녀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개최된 한 미술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본 화가 한젬마가 자신의 머리를 소녀와 같은 모양으로 바꾼 것을 기억합니다. 그림 속 포대기도 향수를 자아냅니다. 요즘 엄마들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지만 과거에는 무명천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기를 업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천혜, 포대기라는 아기띠가 요즘은 선진국에서 오히려 인기라고 합니다. 엄마와 아기가 정서적으로 교감하기 쉽고 휴대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림 속에서 소녀의 등에 업힌 아기 동생은 머리 윗부분만 살짝 보입니다. 언니 또는 언니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궁금하셨을까요? 소녀는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습니다. 요즘은 시골 시장에 가야 볼 수 있는 고무신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흰색 고무신은 외출할 때만 신는 귀한 신발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소녀처럼 검은색 고무신을 신었어요. 소녀의 옷은 겉싸개 밑에서 살짝 빠져나온 치마를 제외하고는 한 면이 하얗습니다. 박수근은 백을 사랑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인 프리랜서 여기자 마거릿 밀러에게 보낸 편지에 “그림이 팔리면 그림값의 절반으로 흰 물감을 사서 보내달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을 정밀 분석한 결과 마무리 단계에서 흰색을 사용해 그림 전체에 아연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작가는 선함, 진실함을 상징하는 흰색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작품에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간동아 1035호 그림 읽는 남자 박수근의 작품에는 아기를 보는 소녀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그림 가운데에 배경도 없이 아기를 업은 소녀만 서 있습니다. 소녀는 흰 포대기로 아기를 껴안고, 아기를 지탱하기 위해 손은 뒷짐을 진 채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앞머리를 눈썹 위에 곱게 자른 단발머리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흰 상의와 거무스름한 긴 치마, 치마 밑으로 드러난 가냘픈 종아리, 그리고 검은 고무신의 코가 살짝 들리는 것까지 어느 시대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모습입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고아가 되거나 부모님이 계셨더라도 먹고 살기에 너무 바빠서 ‘아이가 아이를 보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개 큰언니가 일을 나간 엄마 대신 아기 여동생을 키우고 있었어요. 아이를 돌보는 것은 힘들지만 그림 속 소녀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박수근의 절제된 성묘가 아이가 그린 그림 같으면서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의 밝은 표정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검고 가는 선으로 단순화해서 그린 소녀의 표정이 너무 다정하고 대상을 향한 화가의 따뜻한 마음까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박수근 작품 속 소녀들은 대부분 단발머리입니다. 실제 당시 소녀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개최된 한 미술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본 화가 한젬마가 자신의 머리를 소녀와 같은 모양으로 바꾼 것을 기억합니다. 그림 속 포대기도 향수를 자아냅니다. 요즘 엄마들은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지만 과거에는 무명천 하나만 있으면 얼마든지 아기를 업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천혜, 포대기라는 아기띠가 요즘은 선진국에서 오히려 인기라고 합니다. 엄마와 아기가 정서적으로 교감하기 쉽고 휴대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림 속에서 소녀의 등에 업힌 아기 동생은 머리 윗부분만 살짝 보입니다. 언니 또는 언니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궁금하셨을까요? 소녀는 검은 고무신을 신고 있습니다. 요즘은 시골 시장에 가야 볼 수 있는 고무신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흰색 고무신은 외출할 때만 신는 귀한 신발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소녀처럼 검은색 고무신을 신었어요. 소녀의 옷은 겉싸개 밑에서 살짝 빠져나온 치마를 제외하고는 한 면이 하얗습니다. 박수근은 백을 사랑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원자인 프리랜서 여기자 마거릿 밀러에게 보낸 편지에 “그림이 팔리면 그림값의 절반으로 흰 물감을 사서 보내달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그의 그림을 정밀 분석한 결과 마무리 단계에서 흰색을 사용해 그림 전체에 아연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작가는 선함, 진실함을 상징하는 흰색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작품에 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간동아 1035호 그림 읽는 남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베이비 업은 소녀, oil on hardboard, 38.2 x 17.5cm / Seoul Auction(2016.3), 9.5억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 입니다. 베이비 업은 소녀, oil on hardboard, 38.2 x 17.5cm / Seoul Auction(2016.3)、9.5億

어렸을 때 시골 마을에서 자주 봤던 풍경이에요. 개발독재 시대의 문턱까지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작품 ‘아기를 업은 소녀’는 경매 시장에서 9.5억에 낙찰되었습니다 ……………………………….. 풍경화 어렸을 때 시골 마을에서 자주 봤던 풍경이에요. 개발독재 시대의 문턱까지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작품 ‘아기를 업은 소녀’는 경매 시장에서 9.5억에 낙찰되었습니다 ……………………………….. 풍경화

판잣집, 1950년대 후반 성신여대 박물관 판잣집, 1950년대 후반 성신여대 박물관

풍경(山), 1959, oil on canvas, 36×70 cm 풍경(山), 1959, oil on canvas, 36×70 cm

풍경1959년 캔버스에 기름, 36×70cm 풍경, 1959년 캔버스에 기름, 36×70cm

북한산 밖의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겨울이 지나가는 오름,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의 산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군데군데 노란 물을 묻혀 바른 것은 봄의 색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북한산 밖의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겨울이 지나가는 오름,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의 산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군데군데 노란 물을 묻혀 바른 것은 봄의 색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드보드 、 22 x 33.5cm / K-옥션 (2015.7)、4.6하드보드 、 22 x 33.5cm / K-옥션 (2015.7)、4.6億

풍경(산), 1961 풍경(산), 1961

나무가 있는 풍경, 1950년대 38.3×27.5㎝ [아이옥(2008.8), 7.5억] 나무가 있는 풍경, 1950년대 38.3×27.5㎝ [아이옥(2008.8), 7.5억]

강가, 1964 강가, 1964

꽃.

진달래, 1933 진달래, 1933

진달래’는 1933년에 그린 것으로 박수근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그림 뒤에 ‘진달래, 양구, 박수근’이라고 쓰여 있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1933년에 그린 것으로 박수근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그림 뒤에 ‘진달래, 양구, 박수근’이라고 쓰여 있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Magnolia, 1960, の油 キャンバス, 41 x 53 cm, Private Collection / Hong Kong Auction (2015), 1.7 billion Magnolia, 1960, の油 キャンバス, 41 x 53 cm, Private Collection / Hong Kong Auction (2015), 1.7 billion

When it blooms, 1961 When it blooms, 1961

<Flowering Age> is a work of placing large trees in the center of the screen and filling them with small trees on both sides. Unlike the title, it is not easy to observe the fact that flowers are blooming. There is an explanation that “the soft yellow-green leaves and dark pink buds between the branches tell us that it is spring.” If you look closely at people with good eyes, you can see the pink touch that represents flowers. In general, spring follows the season of ripening the sun, blooming season, and fresh green season. It can be said that the flowering season falls from mid-March to early April. Therefore, if you are an adult whose flowers are starting to bloom, it is time for the whole tree to remain. It’s still cold, but it’s an expression of spring coming soon. <Flowering Age> is a work of placing large trees in the center of the screen and filling them with small trees on both sides. Unlike the title, it is not easy to observe the fact that flowers are blooming. There is an explanation that “the soft yellow-green leaves and dark pink buds between the branches tell us that it is spring.” If you look closely at people with good eyes, you can see the pink touch that represents flowers. In general, spring follows the season of ripening the sun, blooming season, and fresh green season. It can be said that the flowering season falls from mid-March to early April. Therefore, if you are an adult whose flowers are starting to bloom, it is time for the whole tree to remain. It’s still cold, but it’s an expression of spring coming soon.

Peach flowers, early 1960s, oil on canvas, 19 x 26 cm Peach flowers, early 1960s, oil on canvas, 19 x 26 cm

<Flower of Poxa> is a work depicting a light pink flower blooming on a branch of a Poxa tree extending to the right and a blue leaf growing at the end of the branch. <Flower of Poxa> is a work depicting a light pink flower blooming on a branch of a Poxa tree extending to the right and a blue leaf growing at the end of the branch.

모란, 1960, oil on canvas, 40.9 x 53 cm 모란, 1960, oil on canvas, 40.9 x 53 cm

Peony, early 1960s / K-Action (2020), 310 million Peony, early 1960s / K-Action (2020), 310 million

a still life painting.

1952 yellow croaker on cutting board 1952 yellow croaker on cutting board 1952 yellow croaker on cutting board

This work is a 1952 work <Flag of condolence on the cutting board> that Park Soo-geun presented to Oh Deok-young (1904-1991) who was the homeroom teacher of an ordinary school who led him to the path of a painter in the 1920s. This “Obi on the Cutting Board” owned by Oh Deok-young’s grandson can be said to be the prototype of the masterpiece “Obi” drawn 10 years later. However, compared to the 1962 work “Obi,” the unique texture of the artist Park Soo-geun is not noticeable, and the composition is somewhat different. Park Soo-geun leaves a total of three paintings of yellow corvina over a period of 10 years. Currently, the 1962 work, “The Yellow Fish,” is regarded by critics as the best still life painting in Korea. This work is a 1952 work <Flag of condolence on the cutting board> that Park Soo-geun presented to Oh Deok-young (1904-1991) who was the homeroom teacher of an ordinary school who led him to the path of a painter in the 1920s. This “Obi on the Cutting Board” owned by Oh Deok-young’s grandson can be said to be the prototype of the masterpiece “Obi” drawn 10 years later. However, compared to the 1962 work “Obi,” the unique texture of the artist Park Soo-geun is not noticeable, and the composition is somewhat different. Park Soo-geun leaves a total of three paintings of yellow corvina over a period of 10 years. Currently, the 1962 work, “The Yellow Fish,” is regarded by critics as the best still life painting in Korea.

도마 굴비, 1952, oil on canvas, 38 x 45.5 cm, private collection 도마 위의 굴비, 1952, oil on canvas, 38 x 45.5 cm, private collection

Unlike ordinary still life paintings, it is a picture of yellow corvina placed with a sword on a cutting board. It seems like it’s just before cooking, but Park Soo-geun seems to have tried to express his daily life as it is. The yellow corvina on the cutting board was drawn in the same year as the yellow corvina on the cutting board, and the shape of the overlapping yellow corvina is simplified and the knife is placed next to it to show a change in the shape. The size is about 20cm wide and 20cm wide, but the density of the material filled with the picture and the technique of using the paint layer applied on the screen make you feel the change of the painting style intuitively. Unlike ordinary still life paintings, it is a picture of yellow corvina placed with a sword on a cutting board. It seems like it’s just before cooking, but Park Soo-geun seems to have tried to express his daily life as it is. The yellow corvina on the cutting board was drawn in the same year as the yellow corvina on the cutting board, and the shape of the overlapping yellow corvina is simplified and the knife is placed next to it to show a change in the shape. The size is about 20cm wide and 20cm wide, but the density of the material filled with the picture and the technique of using the paint layer applied on the screen make you feel the change of the painting style intuitively.

굴비,1962,oil on hardboard,15 x 29 cm 굴비,1962,oil on hardboard,15 x 29 cm

The work “Koriboshi” is a kind of monochromatic painting painted in dark brown. I painted two dried yellow corvina by applying thick paint and drying it on top of the drying paint. It is a masterpiece of modern and contemporary still life paintings that combines the clear shape created by the two yellow corvina with the formative tension that comes from the expression with large eyes and mouth closed by overlapping each other. It is true to its realistic form, but it is also lightly studded with the unique thick, old-fashioned Matiere and other writers’ personalities. Ten years after “The Yellow Corvina on the Cutting Board,” the 1962 work “The Yellow Corvina” was owned by Park Myung-ja, chairman of the gallery who worked as an employee at the Euljiro Peninsular Gallery in Seoul in the early 1960s. When Chairman Park Myung-ja got married in 1966, the year after the writer’s death, Kim Bok-soon, the wife of writer Park Soo-geun, handed it over as a gift. <Krubi> sent to Park Myung-ja’s art dealer has a history of buying back and donating it for 250 million won, which has increased 10,000 times since the opening of the Park Soo-geun Museum in Yanggu-gun, Gangwon-do, in 2002. The work “Koriboshi” is a kind of monochromatic painting painted in dark brown. I painted two dried yellow corvina by applying thick paint and drying it on top of the drying paint. It is a masterpiece of modern and contemporary still life paintings that combines the clear shape created by the two yellow corvina with the formative tension that comes from the expression with large eyes and mouth closed by overlapping each other. It is true to its realistic form, but it is also lightly studded with the unique thick, old-fashioned Matiere and other writers’ personalities. Ten years after “The Yellow Corvina on the Cutting Board,” the 1962 work “The Yellow Corvina” was owned by Park Myung-ja, chairman of the gallery who worked as an employee at the Euljiro Peninsular Gallery in Seoul in the early 1960s. When Chairman Park Myung-ja got married in 1966, the year after the writer’s death, Kim Bok-soon, the wife of writer Park Soo-geun, handed it over as a gift. <Krubi> sent to Park Myung-ja’s art dealer has a history of buying back and donating it for 250 million won, which has increased 10,000 times since the opening of the Park Soo-geun Museum in Yanggu-gun, Gangwon-do, in 2002.

감자, 1952; Oil on Hardboard 26 x 52 cm 감자, 1952; Oil on Hardboard 26 x 52 cm

정물, Oil on Hardboard, 28 x 43 cm / Seoul Auction (2011/12), 1.5 억 정물, Oil on Hardboard, 28 x 43 cm / Seoul Auction (2011/12), 1.5 억

Peach, late 1950s, oil on canvas, 28x50cm, Korea University Museum Peach, late 1950s, oil on canvas, 28x50cm, Korea University Museum

<Peach> is an unusual work that actively expresses various colors and depth of space in Park Soo-geun’s paintings. It’s much prettier because the color is added. <Peach> is an unusual work that actively expresses various colors and depth of space in Park Soo-geun’s paintings. It’s much prettier because the color is added.

Iwatori 1964 Hardboard with Vegetable Flowers, 15×19.5 cm Iwatori 1964 Hardboard with Vegetable Flowers, 15×19.5 cm

The work owned by the Park Soo-geun Museum was drawn as a gift to poet Kim Fran at the time of Park Soo-geun’s survival, and the title “Love” is written on the back, and it is known as one of two <rock and bird> works produced by Park Soo-geun in 1964. The work owned by the Park Soo-geun Museum was drawn as a gift to poet Kim Fran at the time of Park Soo-geun’s survival, and the title “Love” is written on the back, and it is known as one of two <rock and bird> works produced by Park Soo-geun in 1964.

Celebration, Park Soo-geun Museum of Art, Park Soo-geun Museum of Art

a watercolor painting. a watercolor painting.

a village, a village, a village, a village. a village, a village, a village, a village.

Old Tree, 1961, Watercolor & Colored Pencil on Paper, 23 x 52 cm Private Collection Old Tree, 1961, Watercolor & Colored Pencil on Paper, 23 x 52 cm Private Collection

“Old Tree,” a 1961 watercolor painting, was completed by applying a foundation to a bold composition containing two trees, with thin brushstrokes stacke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The old trees in the shape of ‘ㄱ’ and ‘Y’ are placed on the right side and the screen is filled with branches from these trees. It is called an old tree, but the tree is full of white flowers and leaves, giving a bright impression unlike other paintings by Park Soo-geun. The leaves are long and narrow, and the bark is long and torn vertically, so it feels like a willow tree. “Old Tree,” a 1961 watercolor painting, was completed by applying a foundation to a bold composition containing two trees, with thin brushstrokes stacked vertically and horizontally. The old trees in the shape of ‘ㄱ’ and ‘Y’ are placed on the right side and the screen is filled with branches from these trees. It is called an old tree, but the tree is full of white flowers and leaves, giving a bright impression unlike other paintings by Park Soo-geun. The leaves are long and narrow, and the bark is long and torn vertically, so it feels like a willow tree.

Chicken and chicks, 1962-1963, oil on canvas, 16 x 26 cm / Seoul Action (2006.12), 115 billion chickens and chicks, 1962-1963, oil on canvas, 16 x 26 cm / Seoul Action (2006.12), 115 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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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paint and pencils on paper, 24 x 30 cm 1962, paint and pencils on paper, 24 x 3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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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village, 2012, 24.2×33.4cm Home village, 2012, 24.2×33.4cm

The work “Hometown Village” was drawn by Park In-sook, the eldest daughter of artist Park Soo-geun, and included her hometown in Jeongrim-ri, Yanggu, Gangwon-do. I have inherited my father’s style of painting, but the color is a little brighter and more colorful. It is worth evaluating that Park In-sook’s work was painted beautifully in Park Soo-geun’s style as a new attempt. However, the composition and details do not seem to be as good as Park Soo-geun’s achievements, so I would like to introduce a piece of work instead. The work “Hometown Village” was drawn by Park In-sook, the eldest daughter of artist Park Soo-geun, and included her hometown in Jeongrim-ri, Yanggu, Gangwon-do. I have inherited my father’s style of painting, but the color is a little brighter and more colorful. It is worth evaluating that Park In-sook’s work was painted beautifully in Park Soo-geun’s style as a new attempt. However, the composition and details do not seem to be as good as Park Soo-geun’s achievements, so I would like to introduce a piece of work in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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